스티브 잡스가 집착했던 애플의 철학, '심플'
작년 2021년 10월 5일은 애플의 전 CEO, 스티브 잡스가 타계한 지 10년이 된 날이다. 내가 대학생 때 스티브 잡스가 췌장암으로 별세했다는 기사를 접하곤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새록새록 하다. 그 후에 잡스가 췌장암을 미리 치료할 수 있었지만 본인의 대체의학을 향한 고집으로 치료 시기를 놓쳤다는 소식은 더욱더 충격이었다.. '천재들은 다 이런가?' 잡스의 기행은 워낙 유명해서 궁금하신 분들은 한번 검색해보길 바란다. 잡스는 산업디자인을 전공했던 나와 주위 친구들에게 있어 가장 대중화된 롤모델 중 한 명이었다. 그래서 제품 디자인의 혁신가이자 선구자라고 불리는 애플의 CEO를 기리는 마음은 다들 비슷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 시절엔 말 만 잡스를 존경했다고 생각했던 걸까? 딱히 그를 알아보려고 노력하지 않았던 거 같다. 그래서 필자 나름대로 여러 책을 읽고 잡스의 (미친)철학을 분석해보았다. 스티브 잡스가 애플을 위해 고집했던 브랜드 정신과 집착을 이 글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느껴보길 바란다.
일단 스티브 잡스는 그다지 신사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오죽하면 애플 직원들이 회사 엘리베이터를 타기 꺼렸다고 한다. 그 이유는 엘리베이터에서 잡스를 마주치는 순간 압박 면접과도 같은 질문이 쏟아진다고 했다. '당신이 애플을 위해서 하는 일은 무엇이죠?', '내가 당신에게 돈을 주면서까지 고용해야 할 이유를 설명해보세요' 등등 날카로운 질문들을 날렸고, 잘 대답하지 못한 직원이나 본인 마음에 들지 못한 이들은 엘리베이터를 내리면서 가차 없이 해고했다고 한다. 17년 동안이나 협업자로 일한 마케터인 켄 시걸도 여러 일화를 적나라하게 말해준다. 미팅에서 자기가 마음에 들지 않은 시안을 가지고 온 담당자에게 고함을 치는 건 아주 빈번했고 쌍욕을 퍼부었다고 말했다. 또 그는 회의에 참여해서 사람들을 쭉 훑어보고는 한 담당자에게 이 미팅에 참여할 필요 없으니 당장 나가라는 말을 스스럼없이 하였다. 누구나 싫어할 만한 언행과 성격을 가진 이 냉혈한이 전 세계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제품들을 창조했다는 것이 믿어지는가? 수많은 애플 제품에는 잡스가 광적으로 추구했던 브랜드 정신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바로 '심플(simplicity)'이다. 잡스는 심플함을 애플에 녹여내려고 미친 듯이 집착하였다. 먼저 아이폰에 녹여져 있는 심플을 얘기해보겠다. 처음 아이폰이 공개되던 날, 잡스의 프레젠테이션을 보면 아이폰의 주요 특징을 1. 전화기 / 2. 인터넷 커뮤니케이션(앱) / 3. 아이팟(음악) = 이렇게 3가지로 설명하였다. 켄 시걸은 만약 이 3가지 기능에 따라서 세 개의 버튼을 아이폰에 장착했더라면 '거의 완벽한' 아이폰이 만들어졌을 거라고 말했다. 각 버튼을 누르면 그 기능에 더 빠르고 쉽게 접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때 시장을 장악했던 모토로라의 블랙베리를 보면 TV 리모컨이 떠오를 정도로 수많은 버튼이 휴대폰에 들어있다. 그리고 이 모든 버튼에는 각자의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잡스는 가장 단순한 수 '1'을 고집하여 버튼이 단 하나뿐인 아이폰을 내세웠다. (지금의 아이폰에는 버튼도 없다.. 1보다 더 단순한 '0'으로 간 것일까?) 이 충격적인 심플함에 반기를 든 사람도 있었지만, 타협은 절대 없었다. 블랙베리 같은 직관성과 기능 위주의 휴대폰이 넘치던 시대였지만, 잡스는 계속해서 본인의 철학인 '심플'을 밀고 나갔다. 아이폰에 있는 단 한 개의 홈 버튼은 단순하지만 강력한 기능이 있다. 아이폰으로 동시에 많은 앱을 실행시키거나 링크를 깊이 들어가든 이 버튼을 한 번 누르기만 하면 단번에 초기 화면으로 돌아온다. 초반 사용자들은 많은 기능을 가진 타 휴대폰의 버튼에 익숙해 아이폰 홈 버튼에는 적응하기 어려워했다. 하지만 잡스가 추구하는 심플은 사용자들에게 차츰 전이되었고, 결국 아이폰은 여러 스마트폰을 누르고 혁신을 이루게 된다. 이후에 출시되었던 타 브랜드의 스마트폰도 버튼이 하나로 바뀜을 알 수 있듯이.
잡스의 심플 철학은 제품뿐만 아니라 프레젠테이션에서도 나타난다. 멋들어지는 그래픽이나 거추장스러운 디자인 요소는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이런 요소들은 본인이 말하고자 하는 본질을 흐린다고 말했다. 그는 잘 만들어진 프레젠테이션에 집중하는 것보다 제품을 더 돋보이게 할 수 있는 '심플'에 초점을 맞췄다. 실제로 잡스가 발표할 때 화면을 보면 한 페이지에 글자는 거의 없으며, 사진도 한눈에 보기 쉽게 정렬되어 있다. 스피치는 빠르지 않고 명확하게 요점을 콕콕 짚듯이 말한다. 그리고 잡스는 본인이 청취자 입장일 때도 이 심플 정신을 추구하였다. 한 번은 켄 시걸이 자신의 동업자가 잡스에게 프레젠테이션하기 전, 이런저런 기구를 설치하는 모습을 보고 진땀을 뺐다고 한다. 그건 잡스가 극도로 싫어하는 '복잡함'이었기 때문이다. 잡스는 발표 전 이런 부수적인 준비가 자신의 시간을 뺏는다고 생각하였다. 그때마다 그는 인상을 팍 찌푸리면서 이딴 건 다 집어치우고 명확하게 말하고 싶은 거만 말하라고 다그쳤다. 내가 봐도 이 동업자가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스티브 잡스라는 거물 앞에서 발표하는 건 흔치 않은 일이고, 어떻게든 잘 보이고 싶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결국 중요한 건 프레젠테이션이 아니라 이걸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본질이다.
스티브 잡스는 아이폰, 프레젠테이션 등등 모든 '심플'이 '애플'에 들어있기를 원했다. 많은 기업이나 대표님들도 애플이 추구하는 심플의 중요성을 잘 알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애플을 제외한 기업 중 단순함의 철학을 추진하는 기업은 흔치 않다. 오늘도 직원들은 내가 왜 이 미팅에 참석해야 하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회의 때 보여줄 자료는 파워포인트로 꾸미기 바쁘다. 자사 제품 패키지에는 넣고 싶은 이벤트성 문구와 자랑하고 싶은 특징이 너무 많이 들어있다. 이런 복잡함을 빼고 싶지만 계속 넣는 이유는 '조급함'이라고 생각한다. 파워포인트로 자료를 안 꾸미면 직장 상사에게 대충 준비했냐는 소리를 들을 거 같다. 패키지에 적힌 특징들을 빼면 내 아이템이 별 볼 일 없을 거 같고, 타사 제품에 밀릴 것만 같다. 이처럼 잡스가 보여주는 단순함(심플)을 따라 하는 것은 매우 어렵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런 이유가 본인의 타협과 안주가 아니었는지 이번 기회를 통해서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이런저런 핑계로 인해 복잡한 결과물들을 내놓았다면 오늘부터 조금씩 잡스의 '심플'을 실천해보자. 어느 순간 우리 기억 속에 잊혀진 블랙베리를 되새겨보면 알 것이다. 잡스뿐만 아니라 인간은 결코 복잡한 것을 원치 않으며, 지극히 단순하고 쉬운 것을 따를 수밖에 없다.